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4년 한국시리즈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<-2><:> {{{+2 {{{#edd36c '''삼성증권배 2004'''}}} {{{#edd36c '''프로야구'''}}} {{{#ffffff '''한국시리즈'''}}}}}} || ||<:> [[파일:삼성 라이온즈 심볼(1995~2007).svg|width=80]] ||<:> [[파일:현대 유니콘스 심볼(1996~2007).png|width=200]] || ||<:> [[삼성 라이온즈|{{{#FFFFFF {{{+1 '''삼성 라이온즈'''}}}}}}]] ||<:> [[현대 유니콘스|{{{#FAB93D {{{+1 '''현대 유니콘스'''}}}}}}]] || 2004년 10월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[[현대 유니콘스]]와 [[삼성 라이온즈]]간에 진행된 한국시리즈이자 [[현대 유니콘스]]의 마지막 [[KBO 한국시리즈]] 우승. 두 팀은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도 만났고, 결과는 그 시즌 91승으로 최강자로 군림했던 현대의 일방적인 4연승 [[스윕]]으로 끝났었다. 현대와 삼성이라는 [[재계 라이벌 시리즈|재계 라이벌의 대결 구도]]도 있었고 해태와 현대의 수장이자 [[1996년 한국시리즈]]에서 맞붙었던 [[김응용]] 감독과 [[김재박]] 감독의 리턴 매치로도 관심을 모았다. 결과적으로 4승 3무 2패로 현대가 우승했고, 한국시리즈 MVP는 7경기 12⅓이닝 2실점 비자책점 3세이브 평균자책점 0.00의 철벽 투구를 선보인 [[조용준]]이 수상했다. 현대 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한 한국시리즈이기도 하다. 당시 KBO의 "22시 30분을 넘기면 9회 이상의 이닝을 치를 수 없다"는 이른바 4시간 제한 규정 때문에 무려 9차전까지 가버렸다.[* 특히 포스트 시즌의 경우는 해당 승수를 채우는 게 승리 조건이라서 경기가 길어지게 되었다.] 게다가 11월 1일 열린 마지막 9차전은 경기 초반부터 폭우가 내려서 선수, 코치, 감독들까지 다른 날 하자고 했으나 이미 경기가 밀릴 대로 밀려서 어쩔 수 없는 관계로 우천취소 없이 경기를 진행했다.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중간에 3번이나 경기를 중단했다. 선수들도 팬들도 비 때문에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며 봐야 했었다. 게다가 선수들도 장기화된 시리즈에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지쳐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. 그나마도 현대가 9차전에서 이겼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다음 날 또 10차전에 돌입해야 했다. 만약 거기다 무승부라도 나왔다면? 어떻게든 경기를 더 치러야 했다. 결국 경기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했던 규정이었으나 무승부가 속출하는 바람에 2004 시즌만 적용되고 없어졌다. [[파일:external/www.phpschool.com/1098840342_ks.jpg]] 이 해괴한 규정 때문에 야구 선수, 감독뿐만 아니라 당시 인터넷에서도 말이 많았다. 오죽하면 "드디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겨울야구가 성사되나요."라든지, 아니면 "[[성탄절|크리스마스]] 때 여자친구와 한국시리즈 27차전을 볼 거다"라는 둥 온갖 조롱과 비판, 비난이 난무했다. 심지어 [[http://hataijin.egloos.com/viewer/6577205|이 짤처럼 계속되는 무승부로 2031년 한국시리즈 218차전까지 가서도 무승부로 또 한국시리즈가 연기되는 거 아니냐]]는 풍자도 있었다.[* 물론 진지하게 따지면 12월부터는 선수 비활동 기간이라 11월 안에 어떻게든 끝내야 하므로, 실제로 시리즈가 계속 늘어졌다면 1984년 월드 체스 챔피언십처럼 no result로 끝났을 것이다.] 결국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의 차이[* 정규시즌은 정해진 경기 수만 채우면 시즌이 끝나는 반면 포스트시즌은 그렇지 않다.]를 간과한 KBO의 실책이 이 해프닝을 만들어 낸 것. 오히려 준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에서 무승부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걸 운이 좋았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.[* 여담으로 KBO 리그 포스트시즌의 경우 유독 한국시리즈에서 무승부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. 지금까지 나온 8번의 무승부 중 7번이 한국시리즈에서 나왔다. 그중에서 4번은 연장15회 무승부다.] [[프로야구 병풍 사건]]에도 불구하고 나름 흥행을 거두었...으려나? 하지만 있던 팬 거진 다 달아나버렸던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팀이라... 흥행 자체는 무난했던 수준. 그나마 9차전까지 끌었기 때문에 관중 동원으로는 밀리지 않았다. 9차전 때는 비오는 날에 2만 명 이상의 관객이 운집했다. [[2003년 한국시리즈]]의 흥행 대참패를 생각한다면 2004년 한국시리즈는 나름 중박 이상 정도는 친 시리즈였다. 명장면이 많이 나왔는데, 일단 한국시리즈가 9차전까지 갔다는 것 자체가 다시 보기 힘들 장면이고[* 최소한 무승부가 2번 나와서 3승 2무 3패 상황이 되어야 9차전이 열린다.], 4차전에서 [[배영수]]가 10이닝 무실점 무피안타로 호투했으나 11회 교체, 거기에 경기를 승리하지 못하여 [[노히트 노런]]은 달성하지 못했다.[* 8회 2사까지는 퍼펙트 피칭을 보여주는 등 호투했으나 아쉽게도.. 일부 팬들은 비공인 노히트 노런이라는 표현을 쓰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. 이 때 승리했다면 1996년 정명원에 이은 두 번째 한국시리즈 노히트 노런이 됐을 것이다. 다만 한 경기 최다 이닝 노히트노런 기록으로 유효하다.] 그리고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대도 전준호의 한국시리즈 최초 [[홈스틸]]과 같은 경기에서 현대의 한국시리즈 최초 [[삼중살]] 등도 명장면으로 꼽힌다. 시리즈 마지막 경기인 9차전은 경기 내내 쏟아진 폭우로 인해 그라운드는 완전히 흙탕물이 되었고, 수비의 달인 [[박진만]]이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놓친 장면도 나왔다. 이 상황에서 팀의 우승을 마무리 지은 조용준의 빛나는 역투는 아직까지도 회자된다. [[http://www.mgoon.com/ch/serch01/v/919708|7차전 전준호의 한국시리즈 최초 홈스틸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